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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그 후

이순임씨 타이틀 이미지

85명의 천사를 사랑으로 키워낸 대모 - 제15회 장려상 수상자 이순임 씨

처음 시작할 때는 사람들에게 ‘늦둥이 엄마’라 불렸는데, 이제는 ‘손주 보는 할머니’라고 불린다. 그럴 때마다 이순임(66) 씨는 빠르게 가는 세월을 새삼 탓하곤 한다. 1994년부터 어느덧 29년째. 첫 아이를 만났던 순간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는데,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지 이제 마지막 아이를 돌보고 있다
아픔과 고통을 딛게 해준 작은 천사들과의 만남 그때 아프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 뜻깊은 일과 연을 맺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삼십 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암이라는 병에 걸린 이순임 씨는 병원에서 오랜 시간을 투병해야 했다. 갑상선에서 시작된 병은 온몸을 괴롭게 했다. 몇 차례의 수술을 받은 후에도 그는 입·퇴원을 반복해야만 했다. 그만큼 건강이 좋지 못했다.

“건강이 정말 좋지 않았어요. 삶 자체도 버겁게 느껴지고 마음은 우울감으로 가득했죠.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웃집은 너무 행복해 보이더라고요. 위탁양육을 하는 집이었는데, 항상 아기 소리와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부모에게서 떨어진 아이들을 돌봐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이순임 씨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홀트아동복지회 위탁모 활동에 지원했고, 1994년 7월 19일, 꿈에 그리던 첫 위탁아동을 만나게 됐다. 처음에는 가족의 반대가 심했다. 몸도 좋지 않은 아내가 그 힘들다는 육아를 하겠다니 남편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아기를 데리고 온 그에게 남편 박성재(69) 씨는 “아기와 함께 당장 집을 나가라”라는 말까지 했더랬다. 하지만 모진 반응도 잠깐이었다. 아이를 들여다본 순간 남편도, 두 딸아이도 말 그대로 녹아내리고 말았다.

“그때 제 나이가 서른일곱이어서 정말 늦둥이가 생긴 것만 같은 기분이었어요. 그 당시 아이들이 중학생이었는데, 정말 좋아했어요. 남편도 처음에만 반대했지, 막상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금세 태도가 바뀌더군요. 아이가 오고 난 후부터는 집안 분위기도 달라졌어요. 웃을 일도 많아지고, 대화거리도 늘 넘쳐났죠. 가족의 중심에는 늘 아이가 있었어요.”
어그렇게 29년간 그가 돌본 아이만 85명에 달한다. 제15회 우정선행상 수상 당시 총 57명을 돌보았으니 8년간 자그마치 28명을 더 돌본 것이다. 아이들을 잠시 돌보는 것 뿐인데, 과분한 상을 받았다며 그는 여전히 수상 당시를 회상하곤 한다.

아이들의 사연도 다양했다. 배꼽을 단 채 배냇저고리를 입고 온 신생아도 있었고 심장병, 손발 기형, 선천성거대결장, 발달장애 등 의료문제를 가진 아이들도 많았다. 아이들을 돌본 기간도 짧게는 3~4개월에서 길게는 3~4년까지 제각각이었다. 어떤 아이든지 기간이 얼마가 되든지 그는 아이들이 새로운 가족을 만날 때까지 진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해 양육했다.

그의 남편도 아이들에게 최고의 아빠가 되어주었다. 아이가 병원에 가야 하는 날이면, 아내와 아이를 직접 차로 바래다주기 위해 생업도 마다했을 정도다. 여느 집처럼 육아관의 차이로 부부싸움을 벌이기도 한다. 아기니까 괜찮다는 자상한 엄마와 아기여도 안되는 것은 가르쳐야 한다는 엄한 아빠의 흔한 싸움 같은 것들 말이다.

“저희 딸들은 결혼을 해서 아이도 낳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어요. 딸들이 아기를 낳아 키우면 서 저에게 아이 좀 봐줄 수 없겠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저는 단칼에 거절했었죠. 너는 부모고, 너희 아이는 부모가 있으니 네가 책임지면 된다고. 나는 이 아이를 책임져야 하니 그럴 수 없다고요. 알겠다고는 했지만, 내심 서운했겠죠.”
매번 하는 이별임에도 늘 필요한 마음의 준비 위탁모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다름 아닌 이별이다. 85번의 이별을 했지만, 매번의 이별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고, 애정을 쏟았던 만큼 눈물도 쏟아야만 했다.

“첫 아이와 이별하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저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너무 많이 울어서 눈이 퉁퉁 부어 학교에 갈 지경이었죠. 남편도 입맛이 없다며 들던 밥숟가락을 다시 내려놓을 정도였죠. 언젠가는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때는 처음이라 그런지 마음으로는 받아들이질 못했던 것 같아요.”

이순임 씨가 현재 돌보고 있는 아이는 24개월 된 남아로 해외 입양이 확정된 상태다. 세상에 태어나 보름 만에 만나 두 돌이 될 때까지 서로를 엄마와 아들이라 여기며 지내왔던 나날들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에게 새 가족의 사진을 보여주며 부모님이 될 분들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에게도 이별의 준비가 필요하지만, 그를 엄마라고 생각하고 애착을 형성했을 아이에게는 더 많은 이별의 준비가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홀트아동복지회 위탁모 활동은 65세가 정년이에요. 저는 1957년생으로 올해 만 나이 66세죠. 이 아이는 제가 정년 전부터 돌보고 있었기 때문에, 입양을 갈 때까지 제가 돌보기로 한 거예요. 그러니 이 아이가 제게는 마지막 위탁아동인 셈이죠.”

정년퇴직을 앞둔 많은 직장인은 허무함과 박탈감을 느낀다고들 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평생 해오던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일 테다. 하물며 이순임 씨는 직장이 아닌 집에서 자기 자식으로 생각하며 키워왔던 위탁아동들을 더는 맡을 수 없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쓸쓸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아이의 웃음소리가 사라져 고요해질 집이,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과 물건을 챙겨 보내고 나면 허전해질 집이, 그럼에도 집안 곳곳에 남아있을 아이의 흔적들이 그를 더욱 힘들게 하지는 않을지.

그는 마지막 아이를 보낸 후 새로운 봉사를 찾아 나설 생각이다. 아이들이 아니었다면, 건강도 회복할 수 없었을 거라며, 평생 아이들 덕분에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고 말하는 이순임 씨. 85명의 작은천사들을 한결같은 사랑으로 키워낸 그를 우리는 대모(代母) 중의 대모라 불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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