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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담 공유

나의 다짐을 실천한 재활용품 수집 활동(자연보호와 이웃돕기)

작성자
김**
작성일
2011-11-30
댓글
0
조회수
961
나의 다짐을 실천한 재활용품 수집활동( 자연보호와 이웃돕기)
김종태(대구 달서구 진천동 814-2번지)
1. 재활용품을 수집하게 된 배경
본인은 1948년 대구 서구 내당동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평소 부모님이 근검절약하면서 사는 모습을 보면서 자랐다. 가정이 어려운 형편이라 누님은 초등학교도 못 다녔고 형은 초등학교만 겨우 다녔으며 본인은 야간고등학교를 나와 교대에 진학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었다.
집안의 주 수입원은 숙주나물을 아버지 어머니께서 밤잠 설치면서 키워서 대구시내 음식점에 납품하였었는데 1960년대 물 사정이 안 좋았던 시절이라 500m 가까운 거리를 본인도 물지개에 양철동이 두 개씩을 언덕 위 집까지 운반하여 숙두나물 기르기에 적은 힘이나마 보태면서 가난하게 자랐었다. 숙주나물을 키우면서 아버님께선 틈틈이 돈 되는 일을 찾아 하셨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하신 일은 파지를 모아 팔아 생계에 보탬을 주시려고 노력하셨다. 이 때 종이 한 장이라도 함부로 버리기 보담 모아 팔면 작지만 돈이 된다는 점을 보면서 성년이 되었다.
그리고 학교 교육을 통해서 우리나라는 자원이 부족한 나라인 만큼 자원을 재활용해야한다는 점을 내 나름으론 꼭 실천해야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아오다가 1989년 대구동인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본인이 담임했던 6학년 2반 어린이들과 재활용품을 모으기를 시도해 보았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쓰레기장에 나오는 종이류 등을 소각 처리하는 학교가 대부분이었는데 간혹 인근의 주민이 연기와 냄새가 난다고 학교에 항의 전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을 때 였다.
2. 대구동인초 6학년 2반 어린이들과의 폐품 모아 이웃돕기 실천
1989년 대구동인초등학교에서 6학년 2반을 담임하였는데 청소 담당구역이 3층 화장실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늘 안타깝게 생각하였던 종이류 등이 쓰레기장에 함부로 내버려지고 미처 소각하지 못한 것들이 쓰레기장 부근에 넘쳐 나오는 것을 보고 어린이들과 함께 의논하여 쓰레기장 청소와 화장실 청소를 바꾸기로 하였다. 매일 4명 정도 조를 정하여 쓰레기장에 나오는 공책이나 쓰다 버린 미술지 등 종이류를 담임인 본인이 앞장 서서 따로 모아 한 리어카가 되면 부근에 있었던 고물상에 내다 팔기를 거듭하여 158,205원까지 모았었다. 그 당시 학생수가 53명이었는데 1,000원씩 저축통장에 입금시켜주었었고 나머지 105,205원은 경북영양에서 모진 병고로 고생하는 분에게 보내자고 결정하여 성금을 낸 값진 좋은 경험을 아동들과 함께 하였었다.
3. 불의의 사고로 남을 돕겠다는 결심하다.
1990년 대구의 많은 초등학교 선생님을 대상으로 실과수업을 공개해야하게 되었었다. 공개 준비로 3층 교실에 각종 채소 작물을 회분에 재배하였었는데 햇빛을 보지 못한 화분을 창문 밖 처마처럼 나온 좁은 공간에 내 혼자 내 놓고 있었다. 그때 여학생 강현지기 날 도와주겠다면서 참밖으로 나왔다 조심해서 받아라고 하고 내가 하나 둘 화분을 갖다 주었는데 세 번째 화분을 들고 갔더니 강현지양이 보이지 않았다. 깜작 놀라 창밖 아래를 보았더니 저 아래 땅바닥에 강현지양이 떨어져 있지 않았는가! 난 이제 내 직장 생활이 모두 끝이 났구나 생각되었고 1층으로 달려 내려가면서 무조건 하늘에다 빌고 빌었다. 저 여학생만 무사하면 전 남을 위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쓰러진 여학생을 안고 학교 옆 의원으로 갔더니 의사 선생님 말씀이 3층에서 떨어진 학생이 아무 탈이 없네요 하면서 타박 정도의 약을 지어 주었다. 신의 가호였는지 강현지양은 그 다음날 아무 일 없는 양 학교에 나왔었다. 이 일로 나 스스로에게 결심한대로 절약한 돈이나 소량이지만 폐품을 판 돈으로 무료급식소인 요셉의 집에 기증하기를 몇 년간 하였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본인도 승진을 한답시고 정력을 그 쪽으로 투자하는 가운데 처음의 결심이 자꾸 얕아지면서 남을 돕는 일에 소흘해지기 시작하였다. 1999년 IMF를 전후하여 집 안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일이 생겼다. 너무 갑자기 생긴 일이라 이 돈을 갚기엔 매우 힘이 들어서 사표를 낼까 하는 순간도 있었다.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동원하여 갚았지만 부족하여 융자까지 내어서 5년 가까이 걸려 겨우 다 갚을 수 있었다. 돈이 부족하여 폐품을 수집하여 갚을 까하는 생각으로 공휴일 등을 이용하여 틈틈이 재활용품을 수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 돈은 너무 적어 빚 갚는데 별 도움이 안 되었다. 이 당시 교통비를 절약하기 위하여 26km 먼 길을 자전거로 다닌 적도 있었을 정도로 절약에다 또 절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폐품을 판 적은 액수의 돈도 2년간 모았더니 40만원아 되었다. 농촌학교에서 2년간 근무하고 시내로 들어오면서 그 돈은 가정이 어려운 두 집에 20만원씩 기증을 하였다. 동시에 내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은 내 스스로 남을 돕겠다고 하늘에 결심하고도 실천을 계속하지 못함에 대한 하늘의 벌이라고 생각되어 이 때부터 더욱 시간나는대로 재활용품을 수집하여 모은 돈을 나만의 폐품수집통장에 모아두었다가 몫돈이 되면 이웃돕기나 난치병학생 돕기, 장학금 등으로 현재까지 기부를 계속하고 있다.
4. 지금까지 재활용품 모아 총 천 만이 넘는 돈을 기부하였다.
본인이 살고 있는 집은 일반 주택이다. 만약 아파트였다면 재활용품울 모아 판돈이 천만원은 커녕 그 반도 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집 한 켠에 페트 파지, 캔 고철 등을 종류별로 모아두었다가 어느 정도 양이 되면 가까운 고물상에 리어카나 자전거에 싣고 가서 팔았고 그 돈을 폐품 수집 통장에 월 20회 정도 입금을 하고 있는 편이다. 재활용품을 수집하는 시간은 이른 아침에 마을을 자연보호하고 운동삼아 주로 하였다. 그리고 본인은 환경을 보호한다는 신념으로 왠만한 거리는 자전거로 출퇴근이나 볼일을 보았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길 가에 버려진 재활용품을 조금이나마 모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등산 등을 갔을 때도 산에 버려진 고철 캔 등을 다른 사람 몰래 모아오기도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이웃을 돕는 결과를 이루고 있다.
1994년 300,000원. 1995년 500,000원. 2000년 460,000원, 2001년 426,000원, 2003년 400,00원, 2004년 250,000원, 2005년 789,450원 이상 무료급식소 요셉의 집에 총 3,125,450원을 기부하였고, 2004년도엔 유가초등학교 어려운 두 가정에 40만원,2007년 달서구의 어려운 다섯 가정에 총 50만원, 2007년 난치병 학생 돕기에 150만원, 2008년 난치병돕기에 220만원, 2009년 난치병돕기에 2,074,990원을 기부하여 난치병 돕기에만 5,774,990원을 희사할 수 있었다. 2010년도엔 달서구인재육성재단에 100만원 2011년에도 100만원 총 200만원의 돈을 가정이 어려우면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는 인재육성재단에 기부하였었다. 그기다가 금계초와 송일초에 근무하면서 총 11명의 졸업생에게 더욱 근검절약학고 자연을 보호하라는 마음으로 총 11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고 앞으로도 두 학교에 계속 매년 3명의 졸업생에게 3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하였었다.
그리고 달서구 진천동에서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하여 결성한 참사랑봉사단에 2007년 9월부터 월 1만원씩 기부한 돈이 총 50만원이 넘었었다. 지금까지 재활용품을 모아 판 돈으로 기부한 돈이 모두12,900,440이나 될 수 있었던 것은 평소 작은 폐품이라도 지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자연보호 삼아 종이컵 하나, 작은 캔 하나라도 집 마당이 복잡함도 마다하지 않고 10년 넘게 계속 모아 팔았기 때문이다.
5. 앞으로의 각오
41년간의 교직 생활을 2011년 2월로 마무리 하였지만 아직은 평소처럼 꾸준히 재활용품을 모아 팔고 있다. 특히 종이 컵 등 작은 것은 잘 안 주워가는 사람이 많지만 자연보호를 한다는 마음으로 종이 한 장, 캔 한 개, 병 뚜꼉, 하나라도 모아 팔고 있지만 본인에게도 아내와 함께 돌보아야할 손자가 생겼고 또 지금까지 무리하게 열심히 재활용품을 모으느라 몸의 무리를 몰랐는데 퇴직하면서 건강 검진을 받아보았더니 퇴행선관절염이 좀 있다고 하였다. 그렇지만 하늘에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고 또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자원을 재활용하는데 일조를 한다는 마음으로 폐품 수집 활동을 이 내 한 몸이 움직알 수 있는 한 계속하여 이웃을 돕는 일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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